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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의 선구자들

기사승인 2020.03.26  13: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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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해 축제와 고구려 여인 고정임

고등학교 교사 / 대학교 영어과 교수 역임
한국소설가협회 대구소설가협회 부회장

학다리 피리의 서글픈 가락이 주는 해악은 동거란국 국왕 즉 신발해왕 야율돌욕을 자꾸 작아지게 한다는 것이다. 침상에 누워 생각에 빠지면 마음이 끝 간 데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주저앉기 직전까지 갔다. 의무려산[현 중국 요령성 소재.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홍대용의 의산문답이 일어난 산] 산신과 아버님을 만났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중에는 은둔자로 살아도 황태자인 자신을 제치고 거란 본국의 황제가 된 동생 야율요골[대거란제국 제2대 태종 효무황제]에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은 치명적이었다. 돌욕은 도망과 추격의 과정은 이미 끝났으며, 자기는 이제 붙잡혔다고 느꼈다. 어디 숨을 때도 없다. 계속 되는 요골의 공격을 막아내는 변신의 방법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돌욕은 요골의 권력 안에 있는 서글픈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책감이 왔고 그것은 자포자기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요골의 사냥에서 돌욕 자신은 그의 포획물로, 그 다음에는 먹이로, 썩은 고기로, 마지막으로 이제 자신은 무용한 존재인 배설물이 되었다고까지 느꼈다.

그는 이런 생각도 했다. 한번은 침상에서 천편일률적인 일상이 매일 되풀이 되는 자신의 은거하는 모습을 거리를 두고 보자 섬뜩했다. 세상 사람들이 발해왕으로 불리는 자기를 알고 있는, 발전적이고 치밀하며, 성실하고 주도적이며 깔끔한 그런 야율돌욕 대신에 이제는 자신을 속이고 내 편한 대로 몸을 굴리며 노력은 최소한만 하고, 도전적인 위험을 피하려 하는 전혀 엉뚱한 그런 비겁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으름까지도 나무와 새, 사람과 별, 조용한 시내를 바라보는 여유 자적함으로 미화하려는 한심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도 한편에선 그처럼 반복되는 의미 없는 일상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자신을 보니 도대체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런데 이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만 잃게 되고 마침내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 같았다.

“지금 본래적 존재로서의 ‘나’는 퇴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주체로서의 ‘나’ 또한 점점 몸을 둥글려 자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권태와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도연명이 싫다. 그는 실패한 은둔자가 아니던가? 진정한 주체의 성립은 자기 안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념이 지워지고 나와 타자가 구분된 후 맺게 되는 관계들-천명天命-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의무려산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런 흉흉한 은둔을 종식시키고 물처럼 흘러가 ‘우리’라는 본래적 주체를 되돌려 찾으라는 절실한 외침이 아닐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의 흰색은 한두 번의 성대한 축제를 위한 것일 수는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한두 번으로 족하다. 밤은 검어야만 한다. 밤이 주는 검은색은 표면적인 의미인 죽음 밑에 오히려 어머니의 자궁처럼 우주의 호흡에서 느끼는 안온함과 휴식이 있고, 알의 어둠처럼 새벽의 부화를 앞두고 있는 탄생을 위한 고동, 식욕, 성욕 등 깊은 육체적인 생명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인 밤을 빼앗긴 자는 맥문동 열매처럼 잘 익은 검은 엄마의 젖꼭지를 빼앗긴 젖먹이처럼 생존까지 위협받는 가련한 자다. 그는 부여정변 이후 그런 창조의 검은 어머니 색을 놓쳐버리고, 욕망이 쪼그라들어 자폐적이고 도피적인 하얀 불면의 밤을 보내다가 심신이 허약해진 자신이 너무 서글펐다.

밤이 되자 만권당을 빠져나온 돌욕은 움막 터 같은 풀섶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쏟아내면서 슬픔은 오히려 더 격렬해져 목을 놓아 울었다. 이어 몸 안의 울음통에서 울음이 토막 난 창자처럼 끊겨서 나왔다. 하지만 주위는 아니었다. 이제 어디를 둘러보아도 핏빛으로 떨어져 내리는 자신의 눈물에 풀섶의 미물들도 함께 슬퍼해주지는 않았다.

이제 어설픈 동정이 설 자리는 없다. 자신의 파리한 얼굴을 자신이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 “아버지!”하고 쏟아져 나오는 말을 숨이 막히게 참으며 달빛을 뿌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은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이 냉정하다. 부드러운 포단과 같아야 할 달빛도 그날따라 그의 볼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품이 그리웠던 그는 사랑의 원천은 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 아이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밥 먹으라”고 아들을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 같은 것이라고 어렴풋이 여기곤 했다. 그 목소리는 황혼 속에서 밧줄처럼 구불구불 울려 퍼져서 깜깜한 어둠 속으로 해서, 그 소리의 원천이던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 저장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에게 애마 바부르의 울음소리 속에, 여간해서는 잘 불지 않는, 때 아닌 북풍으로 귀청을 울리는 환청 같은, 어머니를 대신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머니가 자식을 부르는 “밥 먹으러 오라’는 억양으로 들리는 게 아닌가.

 “오너라, 달려 오너라, 부여성으로, 내 아들, 돌욕아!”

사년 전 회령성에서 전해들은 소리인데 신음처럼 주문처럼 달려와 귓볼을 때린다. 든든한 후원자인 아버지 야율아보기가 죽은 후, 모정의 부재로 귓불만 만지며 헤매던 돌욕을 8할 넘게 버티게 해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바람 소리가 이제 아버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 목소리는 아버지 당신이 돌아가신 부여성에서 출발하여 백단산白椴山의 자작나무 숲을 가로지르고, 초원을 넘고, 산의 무덤들을 휙휙 지나 달려온다. 춘주春州[현재 길림성 수도 장춘시]를 경유하여 철령을 넘어 요하를 가로지르고 흑산을 거쳐 의무려산에서 바부르와 함께 그의 얼굴을 때린다.

 “징역의 삶이 되어버려 홀로 눈뜨고 덧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만권당 벽도, 핏빛 저승의 무거움에 날개 죽지 짓눌려도 눈을 감지 못하고 밤마다 울어대는 부엉이 소리도, 이제는 모두 처자식처럼 이별해야한다.”

  “나는 시방 서러움에 울다가 위험한 짐승이 되려는 위태위태한 난간에 걸려있다.”

   “나의 내면의 겉껍질을 화형에 처해버리고, 황오潢汙에 도사리고 있는 이무기처럼 살려는[生]는 본마음[心], 즉 ‘성性’을 찾아 이제 모든 걸 놓아버려야 한다.”

 

  “바깥바람을 쐬기만 해도 기적들이 곳곳에 기다리고 있는데 하물며 부여성이라면…. 세상의 일이 역설적이라면, 이곳을 떠나야만 내가 영원한 ‘넋의 골’로 삼으려는 이곳 도은곡道隱谷으로 되돌아 올 수 있지 않겠는가?”

  “자기 파괴적인 육성의 통곡을 집어 던져버려야 한다. 희랍 이야기에 나오는 아틀라스처럼 나 혼자서 떠안고 있는 이 관념의 하늘을 벗어나자. 대신에 혼거混居하는 수많은 족속들이 너나없이 받쳐 든 하늘아래, 음울한 운명에 대항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부여성으로 달려가자.”

  “의무려산에서 매일 대하는 관념의 하늘이란 순간은 달콤할지언정 신기루처럼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부여성에 머물러 있는, 아버지의 척추인 하늘의 정기와 어머니의 젖가슴인 대지의 팽창이 만들어낸 꽃봉오리를 보러가자.”

“설령 부여성에서 발해 상경 천복성, 두만강의 회령성, 요하의 동란국 수도 요양성을 한 바퀴 돌아 바다건너 신라든 후당이든 도망가 살다가 시체가 되어 도은곡으로 되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떠나자.”

그는 산신이 지적한대로 자신의 안으로만 내닫는 구심력으로 응축한 고열의 생명의식은 바위투성이인 의무려산의 불기운과는 상극이라서, 서로 맞불이 되어 오히려 생명을 꺼져가게 한다는 걸 알았다. 이제 내부의 열기로 민들레․복사꽃을 피우고, 꽃뱀을 눈뜨게 하고, 초록제비 묻혀오는 남서풍을 풀무작용 삼아 자신을 풀어놓기 위해 부여성으로 가겠다고 답했다. 아니 이제 그가 가지 않으려고 내달려본들 부여성으로 오라는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어디를 가겠는가? 그것은 부모의 언어를 배워야만 하는 유아의 강요된 선택과 같은 것이 아닌가? 사실 이제 부여성외에 마지막 부를 이름이 없기도 했다. 통치를 하느라 그동안 억제되었던, 돌욕의 근본인 거란 유목민의 방랑의식이 그를 다시 어딘가로 몰아가기 위해 숨 막히게 몸부림치게 했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

그는 무작정 침상을 박차고 나왔다. 그 다음은 나중에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내 친구 야율질리! 이곳을 잠깐 떠나네. 길을 떠난 아이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는 법. 나는 꼭 돌아와, 네게로. 그때까지 잘 있게!”

그는 결국 태황태후의 말씀대로 한 것이다.

 

김 산

·경북 경산 출생

·영어영문학 학사 · 석사 · 박사과정 수료

·고등학교 교사 · 대학교 영어과 교수 역임

·한국소설가협회/대구광역시문인협회/경산문인협회 회원 · 대구소설가협회 부회장

·E-mail: ymk4151@hanmail.net

아시아씨이뉴스 asianews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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