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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마당포럼 명사초청특강

기사승인 2019.08.21  16: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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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 '역경 속에 핀 꿈'

겨울에 춥지 않으면 동백꽃은 피지 않는다. 고난이 동백꽃을 피게 한다. 지나친 고난에 무릎 꿇지 않으면 기어코 꽃으로 핀다. 고난을 이기고 입지(立志)한 김영진 국회의원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1945년 해방 이듬해에 태어난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 해방둥이다. 해방둥이를 극구 말하는 이유는 1945 8 15. 해방으로 인한 기쁨에 부모님의 정열적인 사랑 안에 태어난 온전한 환희의 결과물이라고 자신의 탄생에 주장한다. 주장이 맑고 뜻 깊어서 오히려 소탈하고 미소가 남는 강의였다.

 

2019 7 25. 평일 무더운 여름이었음에도 아우 마당 포럼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이사장 강성재)가족들이 모였다. 김영진 국회의원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5선 국회의원과 53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관록과 인생역정을 듣기 위해 70여 명 가까이 모였다.

 

강의 주제는 '역경 속에 핀 꿈'이었다.

꿈 없이 꽃은 피지 않는다. 김영진 전 장관의 강의에 몰입하는 회원들의 입가엔 웃음, 눈가엔 눈물, 그리고 가슴 먹먹함과 유쾌함이 교차하는 강의였다. 김영진 전 장관은 고난과 역경을 넘어 삶을 일으켜 세우는 극복을 이어갔다.

 김영진 전 장관에게 몸이 아픈 것보다는 더 고통스러운 것이 가난이었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서 누구든 붙잡고 제일 가난한 집을 물으면 열이면 열이 모두 김영진 전 장관의 집이 가난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학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잠결에 부모님 말소리를 들었다. 졸음이 가시지 않아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 보았다. 두 분은 말다툼을 하고 계셨다.

"영진이는 중학교 졸업하면 무릎을 꿇려야겠소"

무릎을 꿇린다는 것은 상급학교에 보내지 않고 학업을 중단한다는 뜻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친구들은 다 고등학교에 가는데 나만 뒤쳐지는 것도 너무 싫었다. 당황스럽고 서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도 그만둬야 한다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어머니께선 떡 장수를 하든 뭐를 하든 가르칠 테니 영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생각은 하지 마시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고마워서 가슴이 먹먹했다.

 

김영진 전 장관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김영진 전 장관은 슬픔과 비통에 잠겼다. 하지만 무언가 해야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어린 김영진은 우체국에 들어가 국장님께 스탬프 찍는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조그만 녀석이 내가 뭐가 뭘 할 수 있냐는 말씀만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지만 이내 스탬프를 빠르게 찍는 열정을 보고 일하라고 허락하셨다.

 

김영진은 스탬프를 잘 찍어서 학비를 벌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도와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했다.

간절함은 빛도 뚫을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국장님께서 타박을 했더라면 오늘의 김영진 장관은 없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어린 가슴에 묵직한 감사함이 뭉클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우체국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한 달에 5천 원씩 받는 월급을 쓰지 않고 우체국 통장에 넣어서 1년치의 돈을 모아 강진 농업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떳떳하게 교복을 입고 교문을 당당히 들어갔다. 온 세상이 부럽지 않았으며 가슴이 벅차고 뿌듯해서 눈물이 났다.

 

농협 임시직을 거치며 10년의 농협생활, 농민운동, 통금해제운동, 5급 청문회를 비롯한 의정 활동 등 인생의 여정을 들려 주셨다. 인생에 있어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두 번째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세 번째는 좋은 친구와의 만남을 살리며 진솔하게 기초한 감사함을 실천의 삶을 누구보다 감사의 마음과 열정으로 지켜나갔다. 모든 일에는 진단과 처방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시절 한·일 의원간의 세계 기록의원연맹을 제안하고 경험에 의한 문화적 종교적 교류를 했던 경험이 하나의 좋은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농촌 출신 국회의원으로 우르과이라운드 입장 반대를 하기 위해 제네바에 갔다. 한국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대표를 만나 람보식 협상을 했다. 쌀 수입이 불가능하다는데 충격을 받아 문화인으로서 가장 강력한 항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한 장로가 말씀하셨다. 죽는 거라고. 죽을 수는 없었기에 또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며, 외치라고 했다. 그대로 실천했다.

 

아스팔트위에서 무릎을 꿇고 세 가지 방법을 김영진의원이 시작했다. 주변에서의 얼마나 가겠냐는 반응이었지만 결과는 있었다. CNA방송, KBS방송국에서 촬영하러 오기 시작했다. 고집스럽게 밀어 붙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원안대로 고스란히 채택되었다. 마침내 UR이행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강성재 이사장이 영암에 있는 '큰 바위 얼굴 청소년 장학 페스티벌'을 곧 시작한다고 했다. 큰바위얼굴은 미국에 있었으며 교과서에도 나왔다. 한데 풍류에 씻겨 없어져 버렸다

 

사진작가 박철 씨로 인하여 월출산에 있는 큰바위얼굴이 세상에 알려졌다. 각도가 제대로 잡혀 모양이 살아났다. 영암 출신 강성재 회장이 곧 영암 큰바위얼굴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강성재 회장의 노력을 보고, 소신 있고 사명감 가득한 사람임을 확인했다. 앞으로 포럼에 적극 참여해주시고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김영진 전 장관은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쁨이라고 했다.

 

강의를 마치고 만난 김영진 전 장관의 모습은 달랐다. 강사로서의 당당함과 의지는 감추고 소탈하고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고난을 넘은 사람다운 넉넉한 풍모가 보였다.

 

: 시인 김희경

아시아씨이뉴스 asianews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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