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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똑같이 어울려 사는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

기사승인 2018.11.07  16: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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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려운(시인)

이제, 가수 ‘철부지’란 이름으로 의연하게 무대에 선 아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잠시나마 새로운 희망이 가슴 한 쪽을 휘젓는다. 그러다가 한편으로 나는 과연 ‘좋은 엄마’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세상의 어떤 어머니라도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렵고 도전적인 모험일 수 있다. 그것이 살면서 가장 보람되고 성취감이 드는 일이라면 기꺼이 감당할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자녀가 남들과 다르게 온전치 못하다면 그로 인해 두 배로 늘어난 삶의 무게를 감당해 내면서까지 끝끝내 좋은 엄마로 남을 수 있을까?

아직 그 결론을 얻지 못했지만 난 여전히 지적 장애(2급)를 지닌 아들을 두고 있는 어머니임에는 변함이 없다. 31살이란 나이에 ‘철부지’란 예명으로 정식 가수 데뷔를 했다고 해도 그 아이의 장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아직 좋은 엄마가 되기 부족하다는 생각에 아들을 향한 나의 노력이 계속되는지 모른다.

어느 집안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아이가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에 다다를수록 주변의 시각은 더욱 따갑게 느껴지게 마련이고, 듣는 사람의 속은 문드러져 가든 말든 주변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받기가 일쑤이다. 특히 어머니인 내 가슴속엔 늘 못을 하나 품고 살아야 한다. 정상인 아이라도 어머니들은 그들의 삶에 유별나고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어린 시절은 물론, 청소년이 되거나 어른이 되더라도 계속되는 역할을 감당한다. 한마디로 어머니가 베푸는 사랑과 보살핌과 격려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물며 장애인인 아이에게는 그것이 배가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것은 나의 해묵은 과제이자 도전이기도 하다.

철부지(본명, 김형천)에게 처음 장애가 있는 것을 안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유난히 계산 능력이 다른 아이들에 견주어 떨어지고, 사물을 잘 기억하지 못하며, 상황 판단 능력 등이 더뎌서 결국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두드렸다. 지능 검사를 비롯한 여러 검사를 거친 결과 지적 장애 2급이란 판정을 받았다. 읽기, 쓰기, 산술 능력, 시간 개념이나 돈에 대한 개념의 습득이 매우 더디며 또래와 비교해 상당한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적절한 지도를 받으면 극히 제한적이기는 하나 자율적인 행동이 일부는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눈앞이 캄캄했고,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우리 아이가 말로만 듣던 지적 장애인이라니...

문제는 성장이었다. 2차 성장기를 지나면서 몸은 점점 커 가는데 늘 어린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밤잠을 설치곤 했다. 특히 몸이 완전한 성인인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는 원치 않는 성적인 실수를 할까 봐 늘 조마조마한 상태를 겪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철부지에게는 지적 장애 외에도 혈압이 높았고, 약간의 뇌전증(간질) 증세까지 있었고, 면역 결핍증까지 있어서 툭하면 감기에 시달리며 콧물을 달고 살았다. 또한 사시인 데에다가 시력(5급)까지 약해 원만한 일상생활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남의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 즈음, 산 속 깊숙이 들어와 벌여 놓은 사업장 건축 일에 매달리며 온몸을 던지다시피 하는 판국이라 장애를 둔 아이에게까지 신경 쓰려니 이래저래 마음 둘 곳이 없었다. 한 순간 현실을 원망해도 소용없었다. 그럴 때마다 철부지를 바라보면, 사회는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 가며 타인에 공감하지 않고 자기 편의만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어떻게 그곳에 나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몇 군데 시설을 알아보고 그곳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내보기도 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그러다 찾은 길이 바로 노래였다. 2015년, 이웃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잠시 기거하던 시절, 그분과 함께 철부지를 난타(7월)와 노래 교실(8월)에 보냈다. 기억력이 형편없던 철부지가 노래만큼은 즐겨 따라 불렀고 미니 카세트를 끼고 살았다. 건축이 완공되고 음향 시설까지 갖추자 시험 삼아 무대에 세워 봤는데 철부지는 마냥 행복한 몸짓으로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다. 마치 날개를 얻은 이카로스처럼 미지의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며 장애의 굴레를 털어버리는 것 같았다. 노래를 계속하면서 잡다하게 복용하던 약도 끊어 가며 건강을 지켜 나갔다. 다행이 3년이 지나도록 특별히 병원 갈 일이 생기지 않았다. 노래를 통해 얻은 행복 바이러스 덕분에 면역력이 생겨난 것 같았다.

결국 작곡가 원종락 선생을 만나 정식 노래 지도를 받으며, 내가 지은 ‘당신의 선물’ ‘오뚜기처럼’, ‘꽃바람’ 등의 시에 곡을 붙여 데뷔를 위한 연습에 돌입했다. 물론,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가사 한 줄 외우는 데에도 수백 번의 반복과 남다른 훈련이 필요했고, 1분짜리 무대 인사 하나 외우는 데에도 한 달이 소요되면서 내 속을 타 들어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8년 5월 26일, 마침내 원주 귀래면에 있는 숲에향기에서 많은 관객이 모인 가운데 정식 데뷔 무대를 갖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성악가 박형준 교수에게 성악과 발성 등을 사사하며 기본기를 다져 나갔다. 이후 라이온스, 동문 모임, 체육 대회 등에 초대 가수로 불려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철부지를 보면서 가수로서의 성장뿐 아니라 장애인이 아닌 누구나 똑같이 어울려 사는 세상의 당당한 일원이 되리란 것을 소망해 본다. 왜냐하면 철부지 역시 충분히 아름답고, 존중 받아야 하며, 언제까지라도 사랑을 나눌 가치가 있는 나의 소중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씨이뉴스 asianews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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